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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une 29, 2020

【김태환 연재소설】 계변쌍학무(40) “어떤가? 새의 모습을 보았는가?” - 울산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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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연재소설】 계변쌍학무(40)

그림 : 배호

해가 비슬산 너머로 자취를 감추고 어둠이 남산자락을 덮을 무렵이 되었다.

석가치가 요깃거리를 내어왔다. 솔잎을 잘게 썰어 곡식가루에 버무린 것이었다. 그것도 한 입에 모두 털어 넣을 만큼 작은 양이었다. 가루를 입 안에 털어 넣은 뒤 물을 마셨다. 입 안에서부터 뱃속까지 알싸한 솔잎향이 뻑뻑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대로 허기를 잊을 만했다.

‘나는 새다. 나는  새다.’

하문은 주문을 외우면서 아령을 생각했다. 잡념이라는 걸 깨닫고 떨쳐내려 해도 자꾸만 아령의 잔영이 따라 붙었다.

아령은 알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 말이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어깻죽지에 있는 깃털이 뽑힌 듯한 피부를 생각하면 아주 황당한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령을 처음 만나던 때를 떠올렸다. 월지에서 새처럼 긴 얼굴을 보며 웃음을 흘렸던 생각을 했다. 월천마을 아령의 기생어미 집에서 첫날밤을 치를 때도 한 마리 새를 안는 듯 했던 느낌을 떠올렸다. 그날은 꿈속에서도 두루미 떼가 월성의 나무 위에서 군무를 추는 모습을 보았다. 도대체 새는 무엇이란 말인가.

하문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이 들지는 않았다. 끊임없이 새와 관련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번에는 월성의 나무숲이 아닌 너른 강가의 갈대밭 위로 두루미 떼가 날아올랐다. 새들의 울음소리가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그 갈대 숲 속에 커다란 새 두 마리가 부둥켜안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커다란 새는 새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단지 새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두 사람의 남녀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데 가운데에 어린 아이가 있었다.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바로 아령이었다. 남녀는 두려운 표정으로 품에 안고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남자는 초조한 표정을 지었는데 무엇인가 결연한 표정이었다.

한 무리의 군사들이 갈대숲에 나타났다. 그때 멀리 강물 위에 돛단배 한 척이 나타나 갈대숲으로 다가왔다. 놀란 듯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군사들이 갈대숲으로 화살을 쏘았다.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갈대숲은 조용해졌다.

하문의 눈에는 갈대숲을 벗어나 멀어지고 있는 돛단배와 아직 갈대숲에 남아 날개깃을 허우적거리고 있는 커다란 새의 모습이 보였다.

              가만히 보니 커다란 새는
              새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단지 새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그 가운데에 어린 아이가 있었다

“어떤가? 새의 모습을 보았는가?”

하문은 석가치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자신이 방금 보았던 것이 꿈인지 생시였는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때 태확강의 갈대숲에서 주워온 것이 바로 커다란 알이었다네. 바로 아령이 태어난 그 알일세. 그 알을 정성이 갸륵한 능지에게 가져다 준 것이 바로 나일세.”

하문은 두 눈을 번쩍 뜨고 석가치를 바라보았다. 방금 꿈을 꾼 것인지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은 것이라 해도 눈앞에 새들이 날아다니는 갈대숲의 전경이 방금 본 것처럼 선명했다.

“능지는 신심이 돈독한 여인이야. 하늘에서 내려준 아이를 위해 보름마다 태확강 갈대숲에 나가 춤을 추었다네. 물론 지금도 추고 있겠지. 아령도 어미에게 배운 춤을 잘 춘다네. 자네도 보았겠지?”

하문은 월지의 연회에서 추었던 아령의 춤을 어렴풋이 기억해 냈다. 그때가 아령의 춤을 처음 보았던 때였다. 그때 아령의 춤은 그리 이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기생어미의 집에서 단둘이 있을 때 방 안에서 추었던 춤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춤을 추는 동안에는 새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였다.  

“어떠냐. 아령아 .지금 네 서방님을 위해 춤을 추어보지 않으련?”

“네. 아버지께서 시키시는데 추어야지요.”

아령은 석가치가 시키는 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었다. 처음에는 물가에서 한가하게 노니는 자세를 잡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발이 바닥에 닿는 시간이 짧아졌다. 절정에 다다랐을 때는 거의 공중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하문은 진짜 한 마리의 학이 방 안에 날아와 퍼덕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어떤가? 대단하지 않은가?”

석가치가 박수를 치면서 하문에게 물었다.    <계속>

김태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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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8, 2020 at 10: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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